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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는 기록으로 / 고고학적 발견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3000년경 농업생산이 늘어나, 농업사회 발생. 세계 각처에서 다소 공통적으로 발생,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문명.

    앞으로 더 확인될지는 모르지만, 여러 여건상 여기 제외하고는 확인하기가 어려울듯.

    이 농업문명을 고대문명이다. 1900년대 전후하여 고고학적 발굴로 확인할 수 있었다.

  • 문화의 정의.
    • 문화란 별것이 아니다. 쾌적하고 안락한 환경을 지속시키려는 의지이다.
    • 경험의 축적은 전해져서 가능하다. 인간도 한 세대만 살면 축적된 지혜가 없다. 문화가 없는 것을 야만족이라 한다.
    • 인간은 언어와 문자기록을 통해서 문화를 전한다. 축적.
    • 그래서 가장 좋은 문자기록을 가진 중국이 문화를 많이 발전시킬 수 있었다.
      • 상형문자 - 말그대로 표현할 수 있고, 변화가 없는 문자.

        인도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는 어떤 민족이 문화를 일으켰는지조차 알 수 없다.

        유일하게 문화를 일으킨 민족이 현재까지 제 땅을 지키는 건 중국뿐.

  • 쾌적, 안락한 환경을 지속시키는데에 어려움이 다소 있는 곳에서 문명이 발생한다.
    • 날씨가 덥고 먹잇감이 풍부한 곳에서는 쾌적한 환경을 바꿀 필요가 없으니 고대문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 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 인도문화는 1925년 이후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서 발굴로 확인.
    • 인도를 식민통치하기 위해서 그 나라의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연구했다. 일본도 경성제대를 세워 과거의 문화강국이었던 조선사 연구를 철저히 알려 한 것이고, 그것으로 태어난 것이 식민사관이다. 문화적으로 승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식민사관을 통한 세뇌, 자조적 자기비하. 사학자들이 식민사관을 심었던 선생들의 제자이므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술사가 필요하다.
      • 기록으로는 좋았던 시대일수록 이러면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 미술사 - 조선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던 시대 - 모든걸 긍정적인 사고로 살았으나, 정치적으로는 당쟁이 치열했다. 당쟁하다 망한 나라? 상대당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는데 부패할 수가 없다. 일당독재해서 망할 때가 더 무섭다. 일본은 기록으로 들이대서 사관을 내보임.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미술사이다.
    • 유물들을 보면, 나중에 불교미술이 태어났을때의 초창기가 다 나온다. 인더스 문명 출토 인장에서부터 사면신의 모습에서부터 불교미술에서 보는 특징이 잘 드러남.
      • 열대미술은 관능적, 지체를 과장되게 표현. 장대하거나 이목구비를 기괴하게 하거나. 사자 소 따위를 신으로 숭배 - 이것도 불교. 이런것들은 음양과 관계가 있다. 물소는 뿔이 반달, 태음, 사자는 태양.

      인도 대륙의 문화가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하지만, 인도대륙은 독립된 대륙이었다고 한다. 지각변동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부딛쳐서 히말라야 산맥이 만들어졌다. 히말라야와 파미르 고원으로 인도 중국 중앙아시아로 나누어놓았다. 서쪽으로는 히말라야 카라코룸 힌두쿠시 산맥 일반적으로 넘기에는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으로 그리고 인더스강으로. 인더스강은 힌두쿠시산맥에서 발원.

      갠지스강 상류는 히말라야.

      인더스문명이 일으킨 족속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족속이라 생각되고 있다.

      서기전 2000년경 아리안족이 남하하면서 밀려나거나 흡수되었거나 소멸했다. 이들도 유목민족이었겠지만 인도대륙에서는 풍토가 적당하니 농업으로 바꾼 것으로 생각됨.

    • 문화가 이루어지려면 공통된 이념으로 이끌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브라마니즘 브라만교.
      • 브라마니즘의 특징은 강력한 계급제도. 이럴수밖에 없는 것이, 농업사회에는 계급이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농토는 한번 확보하면 대물림을 통해 쓰여지고, 농토를 사는 것도 파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한번 차지한 계급이 그곳에 계속 주도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철저한 계급사회는 모든 농업문명권의 특징. 이런 계급제도로 2000년 가까이 산다는 것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 브라만이 최상층, 정치하는 크샤트리아, 농민 대부분은 바이샤, 천민은 수드라.
  • 무슨 까닭인지 상업문명이 갑자기 도처에서 bc700-800년전쯤 발생.
    • 상업세력을 위한 혁신이념이 또 태어난다. 상업하기 알맞은 요건에서 문명이 꽃핀다. 그것이 그리스문명. 상업하기에 적당한 점은 에게해를 끼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가 바로 연결. 중계무역지로는 최적의 지역이다. 그래서 그리스에서 순수한 상업문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상업이란 계급제도가 상존할 수 없다. 오늘 거지였다가 내일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업세력이 계급타파를 주장한다. 혁신이념으로 사상논쟁이 각처에서 치열하게 일어난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의 이념논쟁을 거친 결과 농업세력의 이념인 유가가 우위를 점했다.
    • 인도에선 상업세력을 위한 이념이 자이나교, 불교가 있었다. 세계사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들이 대체로 이 시기에 거의 동시에 출현한다. 부처 654bc - 533 - 80세, 공자는 증손자뻘. 거의 동시에 출현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 불교가 내세우는 교리의 특성은 평등. 혁신중 혁신이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천민중에서 십대제자에 속하는 사람을 뽑아낼 정도. 상업세력을 이끌려면 금욕을 가르쳐야 한다. 평등과 금욕을 내세운 것이 불교이다. 인도에서 윤회사상을 전통적으로 브라만교에서 수용하고, (인과응보와 윤회- 브라마니즘과 힌두교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종교는 역사의 산물.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하려면 신비주의가 있어야 한다. 환경에 따라 가르치는 덕목은 다 똑같다. 요즘은 살기가 좋아서 광신도가 없다. 광신도 - 자기가 믿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불교의 출현
    • 똑같은 이념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자이나교- 금욕과 평등. 자이나는 보편성을 뛰어넘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 부귀의 표상으로 꾸미고 신분을 과시하는 것이 머리이다. 그러므로 삭발을 하고. 그런데 자이나교는 의복과 체모를 모두 안입고 깎는다. 그래서 더운나라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 불교는 25조가사 9조가사 등 주운 옷을 잘라 서로 나누어 가진 후 모아 입는다.
    • 출가수행 장면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상인들이 도와준다.
      • 소승경전, 대승경전의 차이 - 소승경전 - 원시경전. 석가모니가 직접 설했을 가능성이 큰 경전.
      • 종교경전중 가장 방대한 규모를 가진 것이 불교이다. 기독교는 신 구약 2개밖에, 코란 - 몇 개 안되고, 유가는 7서,
      • 열대지방에서는 말이 많다. 그래서 한이야기 또하고 또하는데. 직접설했다고 부르는 경전이 소승경전, 원시경전. 이 경전이란 것은,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는 방법을 그대로 가르쳐주는, 자기 혼자 깨달아가는 길을 가는, 소승 - 자가용처럼 작은.(소승이란 말을 대승불교에서 깎아내린 말). 인도만 있는 줄 알았을 때 불교가 존재. 교역로가 열리니까 세계가 인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이 바뀔 수 있었다. 지구밖에 무수한 우주가 존재한다는, 우주관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나 아닌 다른 사람 - 그래서 보살이라는 존재. 성불할 능력을 충분히 가진 존재가 그럴 능력을 가진 이들을 데리고 같이 가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유보하고 있는 것. 큰 배나 큰 수레에 주변사람들을 태워서 성불하는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 대승.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아프간 파키스탄, 월지족(감숙성 지역에서 한무제에 밀려남)이 넘어오면서 이 이념을 받아들임. 이런 이념의 변화가 불상 출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 초기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던 시기 약 5세기동안.
          • 이시기에는 불상이 없었다.
        • 부처님 당시에 불상이 만들어졌었다는 소승경전의 이야기 - 정일아함경에선 - 후에 추가된 내용으로 보인다. 불교가 존재했던 모든 진리가 불교에 배치되지 않으면 전부 불경에 포함되었다. 그때문에 고도의 철학체계를 갖춘 경전으로 출현한다.
        • 화엄 법화 금강경등은 고도의 철학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가지려면 상당한 발전 뒤에야 가능. 이런 것은 역사의 산물이다. 그러한 대승경전은 쿠샨제국에서 대체로 만들어졌을 것으로.(세계로 불교가 전파되는 시기에)
    • 문화의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이다. 이념은 보이지 않지만, 안 보이는 이념을 보려면 조형예술품을 보아야 한다. 뿌리가 바뀌어야 예술이 바뀐다. 불상을 표현하지 않는 형식에서, 그 시대의 총체적인 역량의 표출로 불상으로 표현했다면, 그것을 표현할 뿌리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승불교의 출현이다.
      • 대승불교는 ad1세기 중반쯤. 이시기에 월지족이 흉노에게 밀려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옴. 실크로드 - 동서무역이 늘어나니까 중개무역으로 절정에 이른다. 카니슈카 2세 -불교사에서는 최초의 불교외호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 아쇼카왕은 bc3세기전반에 활동했던 사람.
      • 알렉산더 bc324년에 출발해서 10년간 페르시아 쫓아 힌두쿠시산맥을 넘는다. 갠지스강 상류 파라바왕국을 격퇴하고 넘는다. 부하들은 회군하기 원했다. 그때 인도에선 초유의 침공을 받아 연합군을 형성했다. 마가다왕국을 중심으로 근 100만이 모인다. 마가다왕국의 찬드라굽타가 총사령관.자기나라 왕을 쳐서 마우리아왕조를 열었다.
      • 그 손자가 아쇼카왕이다. 아쇼카왕은 추남이었는데, 인도에서는 미남이어야 왕의 자격이 있다. 32상 80종호를 갖춘 사람이면 재가하면 전륜성왕, 출가하면 불타가 된다고 한다. 베다시대부터 전통이다. 아쇼카왕은 99왕자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고 하는데, 할존자란 비구가
      • 점령은 쉽게 했겠지만 통치는 힘들다. 불교를 통해. 세계관이 변한 상황에서 농업문명으로는 힘들다. 상업세력의 이념으로 통일제국을 이끌어가기 위해 불교를 전인도에 전파, 외교사절단을 통해서 주변국에도 보낸다. 불교경전에서 특히 대승경전에서는 불타재세시에, 불타를 낳다가 돌아간 마야부인이 도리천에 상생해있는데, 우전왕이라는 어린 임금이 부처님을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아서 불타의 모습을 만든 것이 불상의 최초라곤 하지만, 근거가 없다.
      • 이시대의 불교미술로는 아쇼카 왕의 석주 (ashokan pillar). 중요한 곳에 거대한 석주를 세우고, 법칙령을 지어 새겼다. 사자 숫소 등을 새긴 기법은 페르시아적인, 사실성이 강한 조형기법으로 제작했다. 상당히 사실적. 인도는 과장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 전통. 페르시아가 도망오면서 이러한 미술도 들어왔다.
      • 상업은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불교문화란 전인도적으로 확산되는 순간부터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불상의 흔적은 하지만 전혀 없다. 여러 유적지의 기념주에서 미술이 쇠퇴하고, 스투파stupa - 유골무덤 사암으로 - 탑파신앙 탑은 본래 무덤이다.
      • 대승경전에서는 사리가 8섬도 더 나왔다고 말했다. 8만4천 - 인도가 당시 8진법이라 그렇다.
      • 8왕들이 탑을 세우려고 서로 싸우다가(사리를 놓고) 8탑을 세웠던 것을 다 건져내어 8만4천탑을 세웠다고 한다. 소형 탑이 있던 곳을 확장했을 가능성이 있는 곳도 있고..
      • 서기전 1세기경 bc2-300년 이때가 탑파.
        • 거기에 불전도를 그리고, 본생담(jataka)을 소재로 한 본생도를 그렸다.
        • 본생도는 부처님이 표현이 되어있지 않다. 상징으로 대체.
          • 탄생은 -나무아래, 보리수나무 아래 대각을 이루고, 암나수 아래서 설법, -나무 아래서 열반.
          • 서양인들이 처음에 발견해놓고 의아해함. 그래서 불상불표현의 시대.
        • 불상불표현 시대에는 3-600년동안 그랬다. 뒤에 연구하면서 왜 이랬을까 - 동양적인 사고방식. 계급 사회에서는 성인이라 부르는 인물을 일반대중과 함께 표현하지 않았다.
          • 왕실 진찬 연회도 에서도 왕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는다.
        • 1세기경 간다라 불상이 출현. 불전도 중 빈자리에 불상을 나타나게 한다. 1세기 말엽.
      • 간다라 양식
        • 그래서 카니슈카 대왕의 증조부때 대승불교 불상이 탄생. 같은 시기에 마투라에서도 불상이 순인도적 조형으로 발생. 무슨 근거로 만들어내나? 베다시대 경전에 32상 80종호를 가진 이는 출가하면 부처가 된다, 재가하면 전륜성왕 - 대체로 가장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의 얼굴.
          • 1세기 후반의 불상은 왕의 모습이면서 일체의 장신구를 알상투 빼고는 다 안함.
          • 우슈니샤 - Ushunisa 계주, 계뉴가 분명한 사실적인 표현
        • 그리스적 조각기법, 사실적인 상호로 표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밑수염)
        • 2세기에 들어 단독 예배상으로 출현.
          • 양식화 - 상투끈이 떨어져나가고, 높고 큰 상투라는 의미에서 살상투, 육계로
        • 3세기 전반쯤 - 상투 윗부분부터 나발이 형성. 모든 터럭은 오른쪽으로 돈다는 이야기. 가지런하게 도
        • 3세기 중반 - 전면이 가지런하게 된다. 현재 볼 수 있는 육계와 나발이 이 시기에 완성
        • 3세기 후반 - 쿠샨제국이 근250년 수명 다함. 사산조 페르시아 침입 받아 멸망. 기존에 있던 모든 양식이 뒤죽박죽해지는데 망하게 생긴것으로 보면 안다.

             

             

             

             

  • 인더스 - 다비다면신 여기서부터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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