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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이름 지울 것.(아마 동명이인)

전시간까지 인도에서 불상 출현 양식변천 종말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이제는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옴ㅕㄴ서 해당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변화되는지

그러려면 불교도입이전단계의 중국미술이 어때ㅑㅆ는가 보아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 하기에 선행으로 해야 함.

   

첫시간에 말하듯이 4대문명권중 하나가 황하문명이다. 그런데, 4대 문명이 일으킨 민족이 아직도 전통을 지키고 있는건 중국뿐이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 일으킨 장본인들이 현재까지 혈통을 이어가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중국의 한족만은 황하에서 일으키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어찌보면 중국문명이 4대 문명중 가장 정통성을 인정해줘야 하는 민족이라 해야 할텐데, 우리는 그 주면에서 엄청난 크기의 중국 주변에서 거의 비슷한 기간동안 독립적인 문화를 유지하며 저항 시달려가면서 지내왔다. 우리는 그래서 중국을 더 잘알아야 한다. 실제로 잘 알기도 하기에 지킬 수 있었다.

   

중국9748000평방킬로미터. 우리국토는 22만평방킬로미터. 50배. 그나마 반동강 100배.

그런데 황하문명지대는 황토지대. 1324000평방킬로미터. 22만평방따져도 7배가 된다. 우리 한반도의 7배지역이 황토지대. 이 지대는 황토먼지가 쌓여 10-200미터까지 황토층을 형성한 지역이다. 이 황토지대의 형성은 유라시아대륙이 워낙 커서 중심부가 사막이며, 그걸 편서풍을 통해 날려 쌓여서 중국대륙에 쌓인다. 유라시아대륙의 수명과 거의 같은 수십만년 쌓인 황토층이다. 그 사이를 중국대륙은 서고동저이다. 인도대륙이 와서 충돌하며 높여놨기에. 파미르고원이 황하의 발원지. 5464킬로미터가 황하 길이. 4000킬로면 만리. 만오천리 길이의 황하. 서에서 동으로 흘러오는데 당연히 황토층을 뚫고 들어온다. 협곡을 지나면서는 중국대륙을 700미터 진선협곡을 지나서는 대평원으로 뚫고 들어온다. 그래서 황토층을 뚫고 지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쌓이므로 이 황하는 중류이하에선 완전히 황토국물이 된다. 6:4의 죽처럼 흐른다. 그렇기에 하상이 항상 높아 물길이 자주 바뀐다. 이런경우 농사짓기 가장 적합하다. 기후만 맞는다면. 그래서 중국은 농사짓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 4계절의 기후란 농사짓기 가장 좋다.

   

열대지역에서는 놀고 먹어도 열매가 달려있기에 문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안락하게 만들고 지속시키려는 노력이 문화인데, 그러므로 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혹독한 자연환경이 문화를 일어나게 한다.

다른지역은 대개 우기건기 뜨거운지역이다 4대문명 - 그런데 중국은 4계절이 있다. 1년사이 50도 차이 - 이러니까 문명이 그것에 대비해서 찬란하게 발전할 수밖에. 그러므로 중국은 현세가 천국, 현세가 천당이다. 농사를 잘 짓고 살면 하늘은 사람에게 행복한 현세를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내세가 필요없다. 종교가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이 만족스러운데 뭐하러 현실 밖의 우주철학을 이야기하느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윤리철학만 발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 군진 붕우 부부 장유간의 관계만 정리해주면 된다. 윤리철학만 발전했지 종교나 우주철학따위는 현실문제를 떠난 것이므로 필요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인도 - 농사짓고는 살아야 하지만 현세가 만족하고 살 수가 없다. 유일신교 - 사막에서 일어난다. 중국에선 그래서 종교가 필요 없었다. 단지 하늘을 받들고 조상을 받드는 것은 현실생활을 질서있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지역과 마찬가지로 서기전3000년경에 문명. 삼황이 1000여년동안 다르심. 수인씨가 불을 가르쳤고, 복희씨가 헌원씨가 배만들고 신농씨 농사 가르치고 - 차례대로 농경문화로 옮겨가는 과정을 말해준다. 오제가 5황제가 다스린 기간 - 여기부터 역사와 실제적 관계를 맺는다. 맨뒤 줄 헌원 제고 또하나 +요순이 마지막 둘 - 서기전 2355년에 등극했다고 하는데 어느정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단기를 서기전 2333이라 정한것도 그걸 보고 정한 것이다. 이 흔적들이 황하 하류 산동 용산유적에서 나온다. 도자기가 일찍부터 발달할 수밖에 없다. 썩지 않으니, 해당 문화층에서 도자기가 많이 출토된다. 흑도 홍도 문화기로 구분하는데, 요임금 - 흑도 문화기 유물이 출토 된다.

그뒤에 요는 순에게 선양이란 제도를 통해 왕위를 물려좋았다. 그후 우임금이 나와서 황하 치수로 임금이 되었다. 치수능력을 인정받아서. 치수는 중국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상이 바뀌는 정도가 한번은 회령쯤으로 흐르다가 어느날 ㄷ갑자기 제주도쪽으로 바뀌어 흘러버린다. 그 몇천리 사는 사람들이 언제 자기를 덮칠지 모르고 사는데.

그러므로 물길을 다스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길을 위해서 한두사람 처단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중국은 질서를 굉장히 중시한다. 대중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는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상업사회에는 대중권익보다 우선할지 모르지만, 중국같은 곳에서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안위가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절대왕권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절대왕권의 출범은 우임금때로 볼수있단다.

그이후로 세습왕정이 시작되어서, 그뒤에 하나라가 종말을 고하고 상나라 - 상이 쇠약해지면서 수도를 옮겨 은나라를 건설한다. 은나라로 도읍을 옮긴 뒤 후기 왕조가 계승되는 은나라시대가 언제인가 서기전 1401년. 은나라 옮겨간 곳이 안양(옛이름 박) -

여기서 대규모의 청동기가 발견. 청동기가 그시대에 시작된것으로 본다. 세계제일의 청동기 제국이 된다. 고도로 발달한 청동기 유물들이 대량출토되어서, 지금여기는 은나라도읍터라고 은허라고 한다.

갑골문 - 거북껍질, 소뼈.

중국문화가 제대로 시작되었구나 라는 것을 청동기와 갑골문으로 알 수 있다.

청동기가 대부분 제기이니까 절대권위를 표출해내고 있다. 기괴한 문양, 하늘 번개 천둥 등의 모양을 아주 가득차고 복잡하게. 절대왕권을 위해 균형 좌우대칭, 거대한 무거운.. 중국문명의 특징적인요소가이때부터나온다. 이러한 상징적 문양이 언제 나타나느냐, 토기에서 그러한 선구가 있었으므로 청동기의 문양을 넣었을 것이라 보는 게 최근 학자들의 의견.

은나라의 멸망 - 300년 단위로 대충 250까지 주기로 나라가 생기고 망한다.

주왕 - 광인. 은멸망할때 술로 멸망했다 하는데, 납중독으로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청동의 재질 동50 주석30 납 6-14

납으로 술잔만들면 발작 정신질환으로 멸망했을 것이란 주장. 어쨌건, 은의 멸망이후 동방이 중심인 은이 상류 고지대의 주나라에 의해 교체. 주는 300년가까이 지나니 말기현상 생겨서 낙양으로 천도하고 그걸 동주라고 한다. 서주의 도읍은 서안 근처 호경이다. 주가 호경과 장안 일대와 동주의 도읍인 낙양 이 두군데를 정한 이후 역대도읍지중 제일 많은 빈도를 가진 도읍지가 장안과 낙양이다./ 북방문화의 중심지.

그건나중일이고.. 동주 서기전745 설립 이게 분열해서 5나라로5패 분류 기원전 400년대에 전국시대가 된다 7웅 그걸 통일한 게 진시황. 서기전 200년대쯤. 물리적인 방법을 써서. 오랫동안 분열해있었기 때문에, 500여년간 분열해있던 7개의 나라 통합하려면 강제수단이 불가피. 문자통일 - 이를 위해 분서갱유. 말안들으니. 책불태우고, 문자아는 선비들을 죽인다. 수레바퀴와 도량형의 통일 - 강제수단으로밖에 안된다. 폭정 - 진시황이 죽자마자 진나라는 나뉜다. 누구하나 나눠지길 원하는 백성이 없었으므로, 통일되었다. 나눠지면 합쳐지고 싶어하고 통일되면 나누고 싶어지는. 통일제국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한나라이다. 유방 서기전206년 - 약200년. 신나라 - 후한 206 바로 후한대에 불교가 들어온다. 영평년간에 불교 들어온다.

   

이래서 중국에선 이미 은시대에 인물상을 충분히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괴 인면사신. 중국황제는 용을 살징하므로 사람얼굴에 뱀몸 등등 이었다가 차츰 사실적 표현으로 간다. 은주시대 사실적 표현은 아직 기괴함에서 벗어나지 못함. 자연주의가 미숙. 진시황대에 이르르면 토용 기원전221년 토용들 - 실물보다 장대한 상을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 그것이 그리스 로마와 다르다. 그리스로마는 비율을 살짝 바꾸는데, 중국은 얼굴을 극사실, 몸은 나체나 근육의 표현이 아닌, 일상의 생활형상을 표현한다. 서기전3세기에있어서는 동서양 양대의 사실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더 낫고 나쁘고는 비교가 어렵다. 그래서 진제국의 문화를 토용을 통해서 확인가능. 토용 만들던 기술이 그대로 한제국으로 계승되어, 한제국에서 인물상을 만들던 방법이 장차 불상만들때 그대로 발휘될수밖에. 그래서 중국화가..뜻을 두었을 때 바로 수준높은 중국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진대 이후 성립되고 있었다는 걸 확인 가능.

   

   

   

홍도 - 기원전 3000년경 흑도문화권에 만들어진것이라. 삼족정. 솥 왜 세발이냐. 물을 끓이라고. 끓여먹지 않음 안되니깐. 도자기가 전부 끓이는 것부터 시작. 끓이기위해 높다.

한국 빗살무늬토기는 하한선이 서기원년쯤. 재질에 모래가 섞여있다. 짐승뿔을

옥을 보석으로 곤륜산 - 월지족들이 차 비단과 바꾸어서 동서교통

섬세한 고전적인 - 세월을 초월해서 현실감각이 있다. 서기전 550

상감 - 월지족을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 - 모난 술잔 - 논어에 나온다.

편병- 기마문화와 함께 전래.

쪽지비녀 앞가르마 - 중국에 있던거 받아들여 계속 유지.

   

노구솥이라고 삼족정 야외에서 불지필때 옛날에도 우리나라는 썼다.

후한대 옷이 바뀐다.

스투파- 중국으로 와선 누각형태가 되었고, 진짜 스투파는 상륜부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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