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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강의.wma>>

   

오디오 녹음 시작: 2011년 9월 8일 목요일 오후 2:07

   

조충연씨 - 단국대 중국초기불교 석사

이번학기 -

   

초반에는 중국과 일본 화원 비교

후반기에는 리움에서 작품 택일하여 발표.

   

오늘 핸드아웃은 오주석 <<단원 김홍도>>

생각을 해서 그림을 보게 되면 남들과 다른 관점도 가질 수 있다 <<- creative

화원은 공무원. 이지만, 밤에는 사적 비즈니스를 한다.

리서치 하는 중.

아래 보면 1786년 41살. "도화서교수 한종유의 소회."

실록에 - 정조가 공직생활에 고충이 있으면 말해봐라.

도화의 일은 국가의 일이지만 원래부터 피폐해진지 오래됐다. 정원이 30명이지만 녹봉 받는 자리는 11개 직 - 순환직. 軍門에 화원들을 나누어 소속시키는 뜻을 상언하여 윤허까지 받았으나 예전 그대로.

1773년 계절마다 筵啓를 올려 어명을 이루었지만 역시 시행결과는 없어 지금껏 억울..

내치는 일이 짖아서 화재를 길러내는 방도가 점차 예전만 같지 않다. 汰去

   

여기에서, 관료들의 녹봉을 조사해야 한다.

녹봉을 왜 못 주었냐면, 조선시대 왕실의 재정구조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뚜렷한 것은, 녹봉이 부족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김홍도 작품들 대부분은 화원으로서 공적인 차원의 작품은 유전작이 거의 없다.

즉, 김홍도의 그림 대부분 사적인 활동으로 그린 것이다. 공적이랄지 사적이랄지 쉽지 않지만.

삼공불환도를 보아도, 강화 유수였던 이가 부하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병풍 3개를 만들었다. 개인적 커미션은 사적이다. 계회를 하고 나누어준 것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조선시대 병풍그림들 - 참여했던 박정혜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 - 노동 비용이 나온다. 10몇냥정도밖에 안된다.

그런데, 11냥이 큰 돈이 아니다.

조희룡의 기록 - 화첩그림을 그리고 30냥을 받았다.

황윤석 이재난고 -

황윤석(黃胤錫.1729-1791) 500석지기인데도 땅을 팔았다. 말도 사야 하고..

<<11이해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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