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녹음.wma>>
오디오 녹음 시작: 2011년 10월 7일 금요일 오후 2:19
10년의 시차가 있는데도 미니멀리즘의 의미를 탐색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보인다.
"Sense and sensibility"
Allusion과 illlusion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페이지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 말고도 의미는 무엇인가도 역시 중요하다.
첫장 donald judd 것 포함, 미니멀리즘이 하려고 하는 것은 allusion와 illusion둘다 못하게 하는게(본래 전통적인 그림- 이걸 보고 밖에 있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 미술이었다)
저드의 작품을 보면 아름답고 감동적이라… 느끼는데, 그래서 나쁜거다. 왜 이쁘지? Literal하다. 일루전도 얼루전도 없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루전과는 다른 일루전이다.
픽토리얼 일루전은 회화화면 캔버스와는 아무관계가 없는 - 일루전,
저드의 작품을 앞, 옆에서만 볼 수 있는 lifed 경험에서 오는 일루전이다. (선험적인 경험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일루전)
선험적인 관념이 있기 때문에 알아보는 것은 자연물의 아름다움인데, 저드의 것은 험이 필요 없다.
선험적인 관념이 있는 사람은 cartsian(데카르트형인간)
이 일루전은 카티지안의 종류가 아니라 메를로 퐁티가 말한것같은 현상학적 개념이다. 보는 그 순간 선험적 개념이 없이 그냥 만나는 순간, 경험되는 순간 실시간으로 의미가 발생한다. 바로 이것이 미니멀리즘의 의미이다.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의미와 지각을 전해준다.
Sense and sensibility는
로버트 베리의 작품 - 그 새로운 주체를 설명하면서 예로 드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 - 코수트 온 카와라 로버트 베리 <-전통적인 자아와 관련한 미니멀리즘.
탈물질화나 포스트미니멀로 설명하면 역사적 맥락밖에 보여주지 않기에, 포스트미니멀이나 탈물질화는 작품에 의한 의미의 발생이나 그런점을 설명하지 않는다. Inert gas, neon. 1969
사막에서 가스를 풀었다. 눈에는 저 가스가 안보이지만 머릿속에서 가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프로토콜 랭귀지 - 매우 개인적인 경험을 지칭하는 용어라 증명이 불가능하다.
내가 초록색을 보면 자기 머릿속의 초록색으로 돌잔치 드레스 입은게 생각난다.
그러나 얘가 그걸 떠올렸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너무 사적이라서 verification이 불가능한 언어.
온 카와라
까만칠 위에 그날짜를 그린다. 1966 jan 31
손으로매우 정확하게 그린다. 너무 오래걸려서 날짜가 넘어가 완성안되면 버린다.
Today painting / dayly
지금도하고있다. 그날짜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self-referential한 자료가 되겠지
I got up 시리즈 - 몇시에 일어났다는 우편물 계속 보냄
I AM STILL ALIVE - 1973 친구들에게 내가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나만 확인할 수 있다. - 이게 프로토콜
여기서 중요한 건 나의 경험 정체성이 완서오디있는 개인이 있고 그사람이 무엇으로 만들면 그게 프로토콜 랭귀지가 된다. 추상표현도 크라우스 말대로라면 개인적 언어가 들어가있다고 한다. 나의 몸을 지배하는 인식이. CARTESIAN역시 같다. 배경이 이미 있고 거기에 바탕이 있으면 아 뭐라고 아는것처럼, 이미 선험적 의식의 존재가 보인다.
일루전을 버린다고 하는 것은, 선험적인 심리적 사건, 이에 따라 작품의 표면에 작가의 자아가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조셉 코수트 베리 온카와라에서처럼 전통적 자아.
전통적 환영적 회화 - 이미 어떤것이 있고 인물이 있고 사건이 있다.
공간은 위 이전에 생겨난다. 개념미술에서의 자아의 공통점은 - 이미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다.
스텔라 멜 보크너 - 매우 공공적인 언어를 사용한다고 크라우스는 말한다. 근데 왜?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을, 크라우스가, 어쨌든 직사각형 캔버스 안에 무미건조하게 썼지만 어쨌든 십자가가 되고, DIE FAHNE HOCH라는 제목이 있다. 제목도 얼루시브 근데 무시하고 , 일단 선을 다만 그었을 뿐인데 아주 일상적인 기호가 드러났다는 얘길 한다.
멜 보크너의 작품 MEASUREMENT ROOM - 벽에다 숫자를 쓴다.
건물의 청사진이 있어서, 그것에 따라 건물이 완성되었다. 근데 개념이 물질화되면
사실 건물 위에 저걸 그었으니깐 건물 먼저 , MEASUREMENT가 새로. 된거니깐 개인적 전통적인 환영주의 / 개인적 프로토콜 이 제거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의미가 어떻게 발생하는가, 의미의 발생은 무언가 선험적인 것에서 나타났다면, 퐁티의
개인의 의식이 통합되어있다는 / 개인이 있다는 생각은 X되고 완성
완성, 정체성이란 것은 완결된 자아와 타자가 있어서 발생하느 s게 아니라 둘이 만날 때 생겨난다는 거임.
의미란 완결된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진행중이란 것이지.
그래서 크라우스가 생각하기에 미니멀리즘이 급진 아방가르드가 될 수 있느 ㄴ이유는 이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주체가 왜??진보적이냐 - 그사람말에 의하면 옳은것 그른것 -그걸 설명한게
미니멀리즘이 생산하는주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되었느냐는 위의 논문에서 얘기했고
판자나 제임스 터렐이 하는 것은 왜 나쁜가?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만들었고, 생산유통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으므로(계획자체를 사고팔고 맘대로 만들어서 팔고 만들어서팔고)
그리고 터렐의 작품 - 전에도 설명했듯이, 미니멀리즘적이긴 하지만,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물리적 재료를 가진 작품이지 않냐. 근데 터렐은 조각이 앞에 존재는 하지만, 조명효과일 뿐이다.
크라우스에게, 문제는, 판자 콜렉션 전시를 보는데, 댄 플래빈의 작품이 주는 효과에 놀랐다.
이쪽방 불빛과 저쪽방 불빛이 합쳐져서 되게 스펙터클한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미니멀리즘이 이러이러하므로 좋다고 말했던 자신의 말과 모순된다. 감각을 현혹시키는 조명의 효과. 과장된 효과를 미술관측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나쁘다. 왜? 스펙터클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미술관의 변화와 함께 이렇게 되어왔는데, 왜?나쁘냐 주체성을 탈락시키므로. 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 쉽게 이용해먹는 주체성이 무어냐. 미술관 자체도 자산이라고 할 정도로(돈이 왔다갔다). 소비자는 어떠해야먄 잘살고 잘 파냐.
그의 설명에 따르면, 주체성이 분열되어있고,
지금,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무언가 진보된 산업회사회에서 살아가는 주체는 점점 특성화되고 분화 파편화 전문화되어있는 상태이다. 그것을 미니멀리즘이 어떻게 저항하고 되돌려주냐. 미니멀리즘이 돌려주는 주체는 신체가 있는 주체. 신체적 경험을 하게 하여 무언가 신체적 느낌을 돌려받게 해주는 주체이다.
후기산업사회의 상품주의 정신없이 내리쬐는 자극에 현혹되어, 대중문화가 타락한 세상, 미디어이미지들이 disembody(신체성이 사라지고 되는 문화를 만듦으로,) 그것에 저항해왔다. 미니멀리즘은.
근데 이건 정신을 못차리는 주체들에게, 즉각적인 신체성을 갖지 못한, 예민한 감각을 갖지 못한, 몸으로 부딪치고 무언가를 알아채는 주체를 돌려준다는 것이다. 경험의 즉각성을 돌려줌으로써.
판자는 그만 자본의 논리에 그대로 따라가줌으로써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미니멀리즘은 공격하려는게 상품화되는것과 기계화되려는 것을 공격하는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것을 도리어 그것들을 따라가버렸다. 감염된 것이다. 판자와 터렐 등이 자본주의로부터 우리를 구해낼, 경험의 즉각성을 돌려줄줄알았는데.
그리하여,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프레데릭 제임슨으로부터 많은 부분 후기산업사회 자본주의의 사회가 상황이 어떠한가를 관점을 이어받았는데,
나의 이성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스케일의 것이 앞에 있기에 공포스럽고, 미적인 쾌락을 준다.
histerical sublime - 크라우스는 이것을 어디다 연결시키나?
디즈니랜드가 주는 것은 이 후기 산업사회가 만든 레저인더스트리이다. 사람들에게 무의미 깊이없는 극도의쾌락을 주는 장소로 예를 든거. Simulachral experience. 이세상에서 말미암은 경험도 없고 비판의식 없게 만들고, 그냥 hyper하게 해주는것, 가짜경험을 주면서 즐기고돈을쓰게한다. 그것이 현대사회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느 ㄴ레저 쾌락이라면, 미술관도 aesthetic immediacy를 주려고 했었는데,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되어있기 때문에 저항할 수 있었는데, 미술관도 너무 sublime을 (almost histeric)준다는 것이다. 감동은 그 거대한 스케일 때문에 지각적 효과때문에 . 그것이 판자, 복종한것이 제임스 터렐, 사람들에게 이런걸 제공하는 디즈니랜드. 테마파크같음.
여기 계속 토니 스미스 - new jersey 고속도로 거대하고 광활한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을 했는데, 마이클프리드 그래서 나쁘다, 크라우스도 조금 의심하고. 그 묘사가 바로 미니멀리즘이라 하여 계속 인용되는데, 모리스 크라우스 할포스터등등
The crux of minimalism
말하고자하는바 - 미니멀리즘으 ㅣ계보.. 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석하고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념의 계보들.
Krauss에 대한 hal poster의 반응이란?
현상학 - 크라우스
포스터 - 그것 좋은데,
미니멀이 실재적인 몸을 가지고 경험을 하는 신체라는데, 포스터가보기엔 너무 추상적이다.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한건 성별 인종이 다르다 contingent하다. 그때그때다르다. 포스터는 조우의 순간도 매우 조건적이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것. 미니멀이 상정한 주체가 진보적이긴 하나, 여러가지 가능한 차이들은 싹 무시한 것. 포스터가 이야기한 것이 위.
프리드와 크라우스가 이야기한 미니멀리즘이 완전한 단절인지, 최절정인지 극복인지, 서로 다른 시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사람이 공통 인용하는 것이 있다면 66페이지에 보면
결국은 포스터는 미니멀과 팝아트를 같이 이야기한다.
둘이 거의 동시대이다. 너무다르지만.
둘이 공통으로 갖고있는것 seriality 무언가 계속 반복되는것.
진보된, 많이 진전된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생산과 소비에서 핵심적인 반복.
Industrial mode 산업사회의 방식. 생산분배소비의 방식이 산업과 무관한분야에까지 파고들었다. 예술레저 스포츠까지도.
그러면 후기산업화사회의 , 후기산업사회는 너무 보편적인, 기계화와 규격화되는 것이 단지 상품의 생산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삶의 모든 부분에 파고들어있다는거.
개념미술이란, 아방가르드의 대의는, 매우 전위적이라,, 어떤것이 부정적,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인가이다. 그러려면 사회가 어떻게 미니멀과 개념미술은 그것을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파고든다. 그것이 네오아방가르드의 핵심이다. 그이전에 아주 거칠게 나누자면, 그린버그는 혼자 고고하게 미술을 보았다.
미니멀과 팝아트는 그방식을 그대로(serial)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비판 저항하고자 하는 사회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부클로 -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얘기할 것이다.
크라우스 포스터 - 다같이
80-90초 neo expressionism 회화가 승리. 급진 진보적 미술로 상업적 성공을 얻었는데, 그것이 레이건 부시정권하에서만 가능한 일종의 것이었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이 소외되고 했던 것.
60년대 미술이 가진 전위적 성격은 둘다 역사적인 인식을,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관한것.
Anna chave minimalism and biography
미니멀리즘에서는 biograaaphㅛ 얘기가 없는데, 중립적이라. 정말 그럴까?
여성들 - 에바 헤스 등등.. 여자들의 작품은 다 바이오그래피에 기반해서 해석을 한다.
미니멀리즘적인 작품임에도불구하고 개인사와 연관해서 해석된다.
그의 주장, - 이 바이오그래피가 삭제된 것이 중립적이지 않고 상당히 정치저ㅓㅓㅓㅓㅓㅓㄱ이며, 그래서 여성작가들이 상당히 소외된것
+ 크라우스랑 애인(모리스)
칼안드레 부인 떨어져 죽음 - 정황상 칼 안드레가 의심받을 수 있었는데 무죄.
미니멀리즘은 난폭함 - 자본주의에게 저항한다고는 하지만 거대 폭력 산업적 - 유럽눈에는 정말 미국적인 걸로 보인다. 무거워서 내려앉아 인부가 죽은 적도 있고.
출신지로 가려보면 실제로는 다 뉴욕 출신도 아니고..
서부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것은 - 서부가 환영적인 것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 -
서부에 대해 크라우스 - 서부의 문화는 동양적인 것과(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동양의 선불교, 니르바나 밴드 같이. 70년대 히피문화와 연결이 된다. 약쟁이, 선불교, 종교… 히피, 자유주의적인 운동, 불순한것들과 희한하게 혼합되어있다고 하는게 서부의 스테레오타입이다.
캘리포니아 서브라임 /
그래서 동부작가들은 진짜 물질적인것들 / 서부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자꾸 형광등이나 구멍빛으로 현혹하고
종교성에서 중요한 것은 아우라. 물리적 거리가 가기 힘들어야 하고.. Pilgrimage 가서 한번 보기 힘든 물건이어야 한다. 이들이 후원했던 작품들이 사막한복판. 그러니까 과거의 순례의 과정과 유사한 것을 통해 가게 되는 신앙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인데, 그것에 일조하게 된 것이 판자와 프리드리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