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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 2강(한국회화사).wma>>

   

오디오 녹음 시작: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오후 2:09

Patricia Ebrey - Taking out the Grand Carriage : Imperial Spectacle and the Visual Culture of Northern Song Kaifeng

  

Patricia Ebrey, Portrait Sculptures in Imperial Ancestral Rites In Song China.

조각 - 위패,

Scarlet Jang, Realm of the Immortals: Painting and Decorating the Jade Hall of the Northern Song.

  

Imperial Sculptures

Ebrey - 송대 역사학자. 주희의 주자가례 번역, Annotation, 당송시대사의 대가.

최근에는 송 휘종에 관한 책을 하나 냈고, 송 휘종에 관심이 많다. 휘종에 관한 Editor로 낸 책 있다.

이 논문이 중요한 이유 - 한국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기에 중요하다.

명패. 神主 = 태묘에 봉안되는 것. 본래 유교 의례에서는 초상이 아니라 신주를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과 초상조각을 모신 사당을 따로 만들었다. 경령궁. 불교적인,유학자들의 반대나 그런것이 많이 .

기본적으로 송대적 전통. 화원제도가 정착, 제도화된 것이 송대이므로 이것을 다루는 것.

신주

황제가 pairing을 부인과 해줘야 하는데, 와이프가 너무 많으면 신주의 pairing이 안되니깐, 어떤 사람은 1:4가 되어서 헐어버리기도 하다.

후궁이기 때문에 황제가 되었을때 empress로 격상시키기도 하고. 신주는 1인당 한명씩 되어야 하는데, 초상조각은 몇개씩 하기도 했다.

이 체제가 조선의 모델이 되었던 체제이다. 역대제왕의 신주를 모시고 교체했는데, 이후 조선 초기부터 왕의 어진을 봉안하는 곳이 생기게 된다. 조선전기 서울 선원전 경기전, 함흥 준원전, 경주에 뭐뭐 이렇게. 초상화를 그려서 여러 카피를 보관했다. 이런 체제가 송대 전통을 따른 것이다. ㅇ

우리는 초상조각이 있기도 하다. 왕건의 초상조각. ㅇ

집에서 제사지낼 때, 주희의 일호불사론.

황제들의 초상조각이 있었다는 건 처음 아는 사람도 있을듯

   

Realm of the Immortals

주된 내용은 - 도교적 요소가 포함되어있는 것을 사료와 함께 엮어서 . 팩트 전달.

곽희의 작품을 엮어서 도교적 요소를 보여주기.

Jade Book?

한림학사를 도교의 선인처럼 여겨지게, 학사원 자체를 도교적 신화에 나오는 곳으로 하는 인식이 한대로부터.

Williams college에 있는데, 캐힐제자이다. 주로 송대 궁정회화에서 정치적 기능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던 사람이다.

원래가 이 주제는 뒤의 주석에 보면, 7번에 , 스즈키케이 회갑논총에 나오는 원정

옥당에 들어갔을 그림은 여기 들어있을 것이다 .

벽화를 그려서 장식화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송대의 시스템들이 조선시대로

궁안의 벽화들은 거의 없어지고, 김규진의 해금강 (덕수궁) 그림정도가 남아있다.

그림 내부를 장식하는. 그런걸 알려주어 화원들의 활동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가능.

   

   

   

  1. 스즈키케이 논문
    1. 송태조 조광윤 초상
      1. 998년 진종 함평 원녕
      2. 대조 3인(waiting to the court)
      3. 예학 6인
      4. 지후 4인,
      5. 학생 40인
        1. 곽희는 예학, 董羽도 예학
        2. 마원, 이당, 하규는 대조까지 했다.
          1. 곽희가 예학이던 시대에 대조에 올랐던 사람은 지금 거의 안알려져있고
    2. 송 휘종 시기 화학(畵學)(신종시기에 개설된 화학을 개혁하여, 일종의 궁정회화 전문학교로 만듦.)
      1. 미불 - 書畵博士.
    3. 애매하기도 하지만, 황제직속의 화원, 서화감식가들이 명확한 제도는 모르지만 특별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것일거다.
      1. 자비대령화원(우리나라)差備대령화원
        1. 녹취재 - 시험을 보는 것. 그중 잘한 사람 보너스 주고.
        2. 한국의 경우 교수와 겸교수가 있다.
          1. 교수 - 화원내에 있는 자리. 그림 가르쳐주는 것.
          2. 겸교수 - 다른데에 있는 사람인데 여기 교수로도 등록되어있는 ADJUNCT PROFESSOR.
            1. 정선 - 관상감겸교수
      2. 곽희, BENEVOLANT한 RULERSHIP의 상징으로서 이러한 산수화를 그렸을 것이다.
      3. 이당 - 북송의 마지막 대조이자, 남송의 초대 대조가 된 사람.
      4. 마원 - 마씨들의 거의 대조를 했다. 마린.
      5. 하규 - 풍우산수도.
      6. 명대 -
        1. 원대에는 사라져버리고, 명대에는 - 기구는 없고, 임시적으로 화원을 데려다 쓰는 것.
        2. 원체화풍 - Painting Academy style
        3. 절파 화가들 상당수가 화원에서 활동했을 것.
        4. 상희,
        5. 대진 - 나왔다 들어왔다 여러 번 반복.
        6. 오위는 궁정화가를 하지 않았다. 잠깐 부르긴 했으나 종사는 안했다.
  2. 청대.
    1. 명대는 미진했다가.
      1. 아마도 내시들때문이었을듯. 거의 권력을 가졌던.
    2. 청대 시스템 -
      1. 건륭제때 되어서 낭세녕등이.
      2. 궁정회화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
      3. 하나만 그린 게 아니라 여러 개.
      4. 공신상, 전쟁기록화, 행사기록화, 등등..
        1. 전체 100상을 그려서, 장원각공신상 - 중갈몽골과 전쟁했는데, 그중 몇몇개에 어제를 남겼다.
    3. 화원을 3등급으로 나누어 월급을 주었다.
    4. 이 시기에는 벼슬을 가진 사람도
      1. 추일계인지 동방달인지 한사람은
    5. 1급화원 11금, 2급은 9, 3급은 7.
      1. 월급만으로도 먹고 사는데, 보너스를 50근이나 준 경우도 있다.

   

   

  1. 경기전

    경녕궁과 같은 기능을 했던, 태조의 어진을 모신 곳. 1872년 모사작품 하나 남아있다. 전주목에서 사람들이 함께 그려서 만들었다.

    어진을 그리면 찰방이나 현감 벼슬을 주었다. 아주 작은 고을 원님.

  2. 영흥 준원전 1913년 유리건판 사진이 있는데, 어디있는지 모른다.
  3. 영조어진 모사작 1900
  4. 1713 연잉군
  5. 철종어진 1861
  6. 17세기 공산초상 전탁
  7. 이명기의 오재순 초상.
  8. 얼마로 했는진 모르나 강세황 초상화로 그려진 71세상이 26살에 이명기가 그렷는데 10몇냥으로 인건비 많이 안들었다.
  9. 장말손 초상 15세기말 .
    1. 공신으로,
  10. 신숙주초상 15세기
  11. 이항복초상 초본 17세기, 서울대학교 박물관,
    1. 초본으로 잡고, 나중에 비단에 그린다.
  12. 유근 초상 17세기 초 개인 초상.
  13. 18세기 후모론 1651년 원작, 송시열 초상. 국박
    1. 화원이 송시열의 부탁을 받고 개인적으로 커미션된거일수도 있다. 후에 어제를 받음.
  14. 관복입고 찍은 것은 공신초상일 경우가 많다.
  15. 권대운기로연회도(권대운과 그 일파가 커미션.) ㅅ1689년 서울대학교박물관.
  16. 공적인건지 사적인건지 애매한 경우도 이싿.

    아까 강세황초상의 경우 71세. 국가가 약간 지원된 경우도 있다. 부분적으로.

    채제공 초상 1792년. 수원시.

    심환지ㅗ상 경기도박물관.

    1. 진신화상첩 부분 심이지 윤사국 규장각.
    2. 준천시사열무도 영조36(1760) 규장각.
      1. 기록화.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 반차도 1759 규장각.경주김씨,

    김홍도, 규장각도 1776년,

    영조세자(문효세자) 책봉의례도. 1784년, 서울대박물관.

    화성원행반차도

    을묘정리의궤반차도 규장각.

    전 김홍도, 화성능행도변 1795. 리움.

    국박 교토대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국박 / 리움 4개본이 있다.

    조선초기부터의 계회도 - 과거급제동기들이 계회 갖고 인원수만큼 만들어 나눠갖는다.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1542 광주박 / 국박 하나씩 있다.

    독서당계회도 1570서울대박물관.

    사옹원계회도 .

    중묘조서연관사연도 1533경 홍대박물관.

    이런것은 공적인 커미션일 경우가 많다. 서연관의 사람들에게 왕이 장치를 베풀었으면 공적일가능성이 많을듯

    호조낭관계회도 -

    총서시예도

       

    안견 그림 최소 30점 나왓다.. 안평대군, 기록.

    김두량 사계산수도

    김두량 김덕하

    궁중승불도.

    이자싱 도갑사관세음보살32응탱

    김명국 - 우리나라가 조선초 도화서 만들다가 인종 - 숙종초까지는 피폐해짐. 17세기에는 어진도 안그린다.

    심지어 세화(new year's painting) 화원이 할일이 별로 없다. 일본가서 인삼밀수까지 했다. <----

    그래서 이런 그림 많이 그린 것이다.

       

    이재난고 - 과거가 아닌 음직으로 장릉참봉을 시작으로 중9품에서 종6픔으로 갔다. 도화서 관직과 같다.

    황윤석의 녹봉은 종7품 직장으로 있었던 연봉이 환전하면 쌀13, 콩6두 - 58녕.

    500석군이었지만 서울에서 관리생활은 부족한 녹봉으로 힘들게 생활. 하숙.

    의복 관복도 비싸니까. 말도 있어야 하고.

    7품도 4.8냥인데 두달마다 받으면 밥먹고 살 돈이 없다는 게 허언이 아니다.

     

       

    회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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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강의.wma>>

   

오디오 녹음 시작: 2011년 9월 8일 목요일 오후 2:07

   

조충연씨 - 단국대 중국초기불교 석사

이번학기 -

   

초반에는 중국과 일본 화원 비교

후반기에는 리움에서 작품 택일하여 발표.

   

오늘 핸드아웃은 오주석 <<단원 김홍도>>

생각을 해서 그림을 보게 되면 남들과 다른 관점도 가질 수 있다 <<- creative

화원은 공무원. 이지만, 밤에는 사적 비즈니스를 한다.

리서치 하는 중.

아래 보면 1786년 41살. "도화서교수 한종유의 소회."

실록에 - 정조가 공직생활에 고충이 있으면 말해봐라.

도화의 일은 국가의 일이지만 원래부터 피폐해진지 오래됐다. 정원이 30명이지만 녹봉 받는 자리는 11개 직 - 순환직. 軍門에 화원들을 나누어 소속시키는 뜻을 상언하여 윤허까지 받았으나 예전 그대로.

1773년 계절마다 筵啓를 올려 어명을 이루었지만 역시 시행결과는 없어 지금껏 억울..

내치는 일이 짖아서 화재를 길러내는 방도가 점차 예전만 같지 않다. 汰去

   

여기에서, 관료들의 녹봉을 조사해야 한다.

녹봉을 왜 못 주었냐면, 조선시대 왕실의 재정구조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뚜렷한 것은, 녹봉이 부족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김홍도 작품들 대부분은 화원으로서 공적인 차원의 작품은 유전작이 거의 없다.

즉, 김홍도의 그림 대부분 사적인 활동으로 그린 것이다. 공적이랄지 사적이랄지 쉽지 않지만.

삼공불환도를 보아도, 강화 유수였던 이가 부하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병풍 3개를 만들었다. 개인적 커미션은 사적이다. 계회를 하고 나누어준 것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조선시대 병풍그림들 - 참여했던 박정혜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 - 노동 비용이 나온다. 10몇냥정도밖에 안된다.

그런데, 11냥이 큰 돈이 아니다.

조희룡의 기록 - 화첩그림을 그리고 30냥을 받았다.

황윤석 이재난고 -

황윤석(黃胤錫.1729-1791) 500석지기인데도 땅을 팔았다. 말도 사야 하고..

<<11이해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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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이름 지울 것.(아마 동명이인)

전시간까지 인도에서 불상 출현 양식변천 종말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이제는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옴ㅕㄴ서 해당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변화되는지

그러려면 불교도입이전단계의 중국미술이 어때ㅑㅆ는가 보아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 하기에 선행으로 해야 함.

   

첫시간에 말하듯이 4대문명권중 하나가 황하문명이다. 그런데, 4대 문명이 일으킨 민족이 아직도 전통을 지키고 있는건 중국뿐이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 일으킨 장본인들이 현재까지 혈통을 이어가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중국의 한족만은 황하에서 일으키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어찌보면 중국문명이 4대 문명중 가장 정통성을 인정해줘야 하는 민족이라 해야 할텐데, 우리는 그 주면에서 엄청난 크기의 중국 주변에서 거의 비슷한 기간동안 독립적인 문화를 유지하며 저항 시달려가면서 지내왔다. 우리는 그래서 중국을 더 잘알아야 한다. 실제로 잘 알기도 하기에 지킬 수 있었다.

   

중국9748000평방킬로미터. 우리국토는 22만평방킬로미터. 50배. 그나마 반동강 100배.

그런데 황하문명지대는 황토지대. 1324000평방킬로미터. 22만평방따져도 7배가 된다. 우리 한반도의 7배지역이 황토지대. 이 지대는 황토먼지가 쌓여 10-200미터까지 황토층을 형성한 지역이다. 이 황토지대의 형성은 유라시아대륙이 워낙 커서 중심부가 사막이며, 그걸 편서풍을 통해 날려 쌓여서 중국대륙에 쌓인다. 유라시아대륙의 수명과 거의 같은 수십만년 쌓인 황토층이다. 그 사이를 중국대륙은 서고동저이다. 인도대륙이 와서 충돌하며 높여놨기에. 파미르고원이 황하의 발원지. 5464킬로미터가 황하 길이. 4000킬로면 만리. 만오천리 길이의 황하. 서에서 동으로 흘러오는데 당연히 황토층을 뚫고 들어온다. 협곡을 지나면서는 중국대륙을 700미터 진선협곡을 지나서는 대평원으로 뚫고 들어온다. 그래서 황토층을 뚫고 지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쌓이므로 이 황하는 중류이하에선 완전히 황토국물이 된다. 6:4의 죽처럼 흐른다. 그렇기에 하상이 항상 높아 물길이 자주 바뀐다. 이런경우 농사짓기 가장 적합하다. 기후만 맞는다면. 그래서 중국은 농사짓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 4계절의 기후란 농사짓기 가장 좋다.

   

열대지역에서는 놀고 먹어도 열매가 달려있기에 문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안락하게 만들고 지속시키려는 노력이 문화인데, 그러므로 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혹독한 자연환경이 문화를 일어나게 한다.

다른지역은 대개 우기건기 뜨거운지역이다 4대문명 - 그런데 중국은 4계절이 있다. 1년사이 50도 차이 - 이러니까 문명이 그것에 대비해서 찬란하게 발전할 수밖에. 그러므로 중국은 현세가 천국, 현세가 천당이다. 농사를 잘 짓고 살면 하늘은 사람에게 행복한 현세를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내세가 필요없다. 종교가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이 만족스러운데 뭐하러 현실 밖의 우주철학을 이야기하느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윤리철학만 발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 군진 붕우 부부 장유간의 관계만 정리해주면 된다. 윤리철학만 발전했지 종교나 우주철학따위는 현실문제를 떠난 것이므로 필요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인도 - 농사짓고는 살아야 하지만 현세가 만족하고 살 수가 없다. 유일신교 - 사막에서 일어난다. 중국에선 그래서 종교가 필요 없었다. 단지 하늘을 받들고 조상을 받드는 것은 현실생활을 질서있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일 뿐이다. 다른지역과 마찬가지로 서기전3000년경에 문명. 삼황이 1000여년동안 다르심. 수인씨가 불을 가르쳤고, 복희씨가 헌원씨가 배만들고 신농씨 농사 가르치고 - 차례대로 농경문화로 옮겨가는 과정을 말해준다. 오제가 5황제가 다스린 기간 - 여기부터 역사와 실제적 관계를 맺는다. 맨뒤 줄 헌원 제고 또하나 +요순이 마지막 둘 - 서기전 2355년에 등극했다고 하는데 어느정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도 단기를 서기전 2333이라 정한것도 그걸 보고 정한 것이다. 이 흔적들이 황하 하류 산동 용산유적에서 나온다. 도자기가 일찍부터 발달할 수밖에 없다. 썩지 않으니, 해당 문화층에서 도자기가 많이 출토된다. 흑도 홍도 문화기로 구분하는데, 요임금 - 흑도 문화기 유물이 출토 된다.

그뒤에 요는 순에게 선양이란 제도를 통해 왕위를 물려좋았다. 그후 우임금이 나와서 황하 치수로 임금이 되었다. 치수능력을 인정받아서. 치수는 중국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상이 바뀌는 정도가 한번은 회령쯤으로 흐르다가 어느날 ㄷ갑자기 제주도쪽으로 바뀌어 흘러버린다. 그 몇천리 사는 사람들이 언제 자기를 덮칠지 모르고 사는데.

그러므로 물길을 다스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길을 위해서 한두사람 처단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중국은 질서를 굉장히 중시한다. 대중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는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상업사회에는 대중권익보다 우선할지 모르지만, 중국같은 곳에서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안위가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절대왕권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절대왕권의 출범은 우임금때로 볼수있단다.

그이후로 세습왕정이 시작되어서, 그뒤에 하나라가 종말을 고하고 상나라 - 상이 쇠약해지면서 수도를 옮겨 은나라를 건설한다. 은나라로 도읍을 옮긴 뒤 후기 왕조가 계승되는 은나라시대가 언제인가 서기전 1401년. 은나라 옮겨간 곳이 안양(옛이름 박) -

여기서 대규모의 청동기가 발견. 청동기가 그시대에 시작된것으로 본다. 세계제일의 청동기 제국이 된다. 고도로 발달한 청동기 유물들이 대량출토되어서, 지금여기는 은나라도읍터라고 은허라고 한다.

갑골문 - 거북껍질, 소뼈.

중국문화가 제대로 시작되었구나 라는 것을 청동기와 갑골문으로 알 수 있다.

청동기가 대부분 제기이니까 절대권위를 표출해내고 있다. 기괴한 문양, 하늘 번개 천둥 등의 모양을 아주 가득차고 복잡하게. 절대왕권을 위해 균형 좌우대칭, 거대한 무거운.. 중국문명의 특징적인요소가이때부터나온다. 이러한 상징적 문양이 언제 나타나느냐, 토기에서 그러한 선구가 있었으므로 청동기의 문양을 넣었을 것이라 보는 게 최근 학자들의 의견.

은나라의 멸망 - 300년 단위로 대충 250까지 주기로 나라가 생기고 망한다.

주왕 - 광인. 은멸망할때 술로 멸망했다 하는데, 납중독으로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청동의 재질 동50 주석30 납 6-14

납으로 술잔만들면 발작 정신질환으로 멸망했을 것이란 주장. 어쨌건, 은의 멸망이후 동방이 중심인 은이 상류 고지대의 주나라에 의해 교체. 주는 300년가까이 지나니 말기현상 생겨서 낙양으로 천도하고 그걸 동주라고 한다. 서주의 도읍은 서안 근처 호경이다. 주가 호경과 장안 일대와 동주의 도읍인 낙양 이 두군데를 정한 이후 역대도읍지중 제일 많은 빈도를 가진 도읍지가 장안과 낙양이다./ 북방문화의 중심지.

그건나중일이고.. 동주 서기전745 설립 이게 분열해서 5나라로5패 분류 기원전 400년대에 전국시대가 된다 7웅 그걸 통일한 게 진시황. 서기전 200년대쯤. 물리적인 방법을 써서. 오랫동안 분열해있었기 때문에, 500여년간 분열해있던 7개의 나라 통합하려면 강제수단이 불가피. 문자통일 - 이를 위해 분서갱유. 말안들으니. 책불태우고, 문자아는 선비들을 죽인다. 수레바퀴와 도량형의 통일 - 강제수단으로밖에 안된다. 폭정 - 진시황이 죽자마자 진나라는 나뉜다. 누구하나 나눠지길 원하는 백성이 없었으므로, 통일되었다. 나눠지면 합쳐지고 싶어하고 통일되면 나누고 싶어지는. 통일제국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 한나라이다. 유방 서기전206년 - 약200년. 신나라 - 후한 206 바로 후한대에 불교가 들어온다. 영평년간에 불교 들어온다.

   

이래서 중국에선 이미 은시대에 인물상을 충분히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괴 인면사신. 중국황제는 용을 살징하므로 사람얼굴에 뱀몸 등등 이었다가 차츰 사실적 표현으로 간다. 은주시대 사실적 표현은 아직 기괴함에서 벗어나지 못함. 자연주의가 미숙. 진시황대에 이르르면 토용 기원전221년 토용들 - 실물보다 장대한 상을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 그것이 그리스 로마와 다르다. 그리스로마는 비율을 살짝 바꾸는데, 중국은 얼굴을 극사실, 몸은 나체나 근육의 표현이 아닌, 일상의 생활형상을 표현한다. 서기전3세기에있어서는 동서양 양대의 사실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더 낫고 나쁘고는 비교가 어렵다. 그래서 진제국의 문화를 토용을 통해서 확인가능. 토용 만들던 기술이 그대로 한제국으로 계승되어, 한제국에서 인물상을 만들던 방법이 장차 불상만들때 그대로 발휘될수밖에. 그래서 중국화가..뜻을 두었을 때 바로 수준높은 중국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진대 이후 성립되고 있었다는 걸 확인 가능.

   

   

   

홍도 - 기원전 3000년경 흑도문화권에 만들어진것이라. 삼족정. 솥 왜 세발이냐. 물을 끓이라고. 끓여먹지 않음 안되니깐. 도자기가 전부 끓이는 것부터 시작. 끓이기위해 높다.

한국 빗살무늬토기는 하한선이 서기원년쯤. 재질에 모래가 섞여있다. 짐승뿔을

옥을 보석으로 곤륜산 - 월지족들이 차 비단과 바꾸어서 동서교통

섬세한 고전적인 - 세월을 초월해서 현실감각이 있다. 서기전 550

상감 - 월지족을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 - 모난 술잔 - 논어에 나온다.

편병- 기마문화와 함께 전래.

쪽지비녀 앞가르마 - 중국에 있던거 받아들여 계속 유지.

   

노구솥이라고 삼족정 야외에서 불지필때 옛날에도 우리나라는 썼다.

후한대 옷이 바뀐다.

스투파- 중국으로 와선 누각형태가 되었고, 진짜 스투파는 상륜부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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